형은 읽어냈고, 동생은 멈춰 섰다
나무와가지 · 2026년 7월 26일
— 다문화가정 형제를 통해 확인한 한글 교육의 두 갈래 길
부탁으로 다문화가정의 4학년 형과 3학년 동생 형제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형은 외부 강사로부터 난독증 진단까지 받은 상태였고, 동생은 그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받침 있는 글자 앞에서 자주 막혔습니다.
이 형제를 매일 점심시간 20분씩, 꼭 한 달간 가르치며 저는 의도치 않은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에게는 처음부터 훈민정음 창제 원리 —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상형(象形), 거기에 획을 더해가는 가획(加劃) — 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쳤습니다.
반면 동생은 이미 어느 정도 아는 글자가 많아, 원리 설명 없이 받침 읽는 법부터 시작 하였습니다.
한 달 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는 글자가 훨씬 적었던 형이 동생보다 더 잘 읽게 된 것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형은 처음 보는 글자 앞에서도 "ㄱ에 획을 더하면 ㅋ"이라는 원리를 스스로 떠올리며 겁 없이 읽어냈습니다.
반면 암기로 글자를 익힌 동생은, 외워두지 않은 낯선 글자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포기하려 했습니다.
원리를 배운 아이는 모르는 글자 앞에서도 추론할 줄 알았고, 암기로 배운 아이는 모르는 글자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 관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며 담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쉬운 글자'가 아니라, 누구나 원리만 알면 스스로 깨칠 수 있는 글자였습니다.
600년 가까이 지난 교실에서, 그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두 아이가 보여주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는 학습 성과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글을 깨친 뒤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동요와 노래로 한글을 익힐 때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말수가 적고 위축되어 있던 아이가 한글을 깨친 뒤 명랑한 본래 모습을 보입니다.
학습의 어려움은 아이의 정서와 자존감에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형제는 결코 학습이 느린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여러 기관에서 여러 차례 한글 교육을 받아왔지만, 자모를 통암기하는 방식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을 뿐입니다.
방법을 바꾸자,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례는 나무와가지가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기초 한글 교재의 핵심 축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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